2016년을 되돌아보며.

일상 2016. 12. 31. 07:24
2016년엔 뭘 했더라?


일단 일적인 면에서는, 3분기까진 꽤 바빴다. 특히 5월 들어가면서 주체 못할 정도로 일이 늘어나기 시작해서, 6월에는 정말 많이 피곤했다. 제대로 준비하고 수업을 시작한 적이 없었다. 결과적으로 조금씩 수업이 빠지다가, 마지막 두 달 동안 월 수입이 본래의 3/5 수준으로 줄었다. 다른 동업자분들도 위태위태한 걸 보아 사회적인 요인도 어느정도 있겠지만, 그렇다고 내가 엄청 잘 했는데 운이 없어서 망한 건 아니다. 아니, 직장 내 업무중에 사실 제대로 해낸 게 없다. 그야말로 무능 그 자체.

학업적으로는 어떤가. 연초에 패기롭게 모 어학원의 텝스 중급 인강을 수강했으나, 강의를 제대로 들은 적이 과연 몇 번이나 있나 싶다. 바빴던 순간들이 있긴 했지만, 솔직히 트위터나 보면서 띵가띵가 놀던 적이 훨씬 많지 않았나? 결국 기한 내에 다 보지도 못해서 녹화시켜둔 강의만 지금 대여섯 개 된다. 그나마도 녹화 못한 강의도 있으니 한심하고 또 한심하다.
그렇다고 영어가 아닌 다른 공부를 제대로 했는가? 그런 것도 아니다. 일에 관련된 공부가 아니라면, 일본어도, 신학도, 다른 아무것에도 나는 전혀 진전이 없었다. 관심 있는 학문에 관한 세미나에도 일 핑계로 거의 참석하지 않았다. 그냥 책을 몇 권 읽은 리스트가 지금도 남아있을 뿐.
결과적으로, 이전부터 계속 목표로 해오던 '서른에 대학원 가기'는 실패, 그것도 완전히 실패였다. 뭐, 사실 연초부터 무리라고는 생각했어. 일을 병행하면서 1년만에 텝스 점수를 그렇게 올리는 건 무리였겠지. 하지만, 1년 가까이 지났는데도 정말 이렇게 그 어떤 분야에도 전혀 진전 없이 제자리걸음일줄은, 정말로, 정말로 몰랐다.

신체적으로는, 연초에 그나마 운동을 좀 해서 그런지 일본 가서 좀 무리를 했는데도 별 탈 없이 다녀올 수 있었다(다녀오고 나서 좀 힘들었지만). 다만 그뿐. 일본 다녀와서는 제대로 운동도 제대로 안 했고, 10월의 잼프 라이브를 다녀와서 허리가 좀 아프다 싶더니, 11월 초부터는 걷지도 못할 정도로 아팠다. 큰 돈 들여 MRI를 찍으니 허리디스크, 그것도 아주 심각한 상태였다. 의사도 디스크 진단 후에는 치료기간을 두 달을 넘게 짚었으나, 다행히 일주일 뒤에는 일이 가능할 정도로 몸을 가눌 수 있었다. 지금은 아주 좋아졌지만, 피곤해지면 때때로 왼발이 저린다. 그럴 때 종종 두렵다. 또 누워서 끙끙대는 건 아닌지. 조금만 더 무리했다가는 영영 허리 못 피고 사는 건 아닌지.

심적으로는 항상 우울했다. 우울해서 매사를 제대로 처리 못하고 그런 내 모습을 보며 더 우울해지는 악순환의 연속이 악화와 완화를 반복하며 올해 내내 나를 쥐고 흔들었다. 일에서도 취미에서도 다른 모든 관계에서도 항상 골머리를 앓았다. 허리디스크로 누워있던 시기에 정점을 찍던 우울증은, 많은 분들의 도움으로 12월이 되어서야 겨우 수그러들었다. 짧게 서술했지만, 개인적으로는 2016년에 나를 가장 힘들게 했던 건 바로 이 우울증이었다. 이거보다 힘든 건 없었다.

덕질은? 그나마 진보했다고 말할 수 있는 영역이다. 일본을 다녀왔고, 파이널 라이브를 직관했다. 그걸 준비하고 실행하는 과정에서 난생 처음 해보는 일들이 산더미 같았고 따라서 익힌 점도 많았다. 7월 초 상영을 시작한 선샤인은 그 이후로 줄곧 내 삶의 활력소였다. 스쿠페스도 계속 하고 있다. 그리고 정말 중요한 거, 국내에 드디어 내한 이벤트가 열리기 시작했다. 관심있는 건 모두 갔다. 시카코와 릿삐, 잼프, 아쿠아(3인)의 내한 이벤트를 다녀왔다. 외부적인 말썽도 있었고(특히 Y놈) 무리하다가 병도 얻었지만, 분명 즐거운 일들이었다. 조금 다른 영역이지만, 와우도 정말 재밌게 했다.
다만... 언젠가부터(아마 작년 말즈음부터) 덕질에 대한 회의감이 조금씩 들기 시작했는데, 그게 평소에 괜찮다가도 갑자기 감정이 휘몰아치는 순간들을 많이 겪은 것. 특히 커뮤니티나 트위터에서 사람들이 티격태격 싸우는 모습들을 보면 네거티브한 감정이 무지막지하게 치솟았다. 사람에 대한 마음뿐만 아니라 취미 자체가 정말 싫어지는 순간들이 나를 덮쳤다. 때때로 죄책감-"이런 것들을 즐겨도 되는 거야?"-도 함께. 분명히 난 재밌게 즐기고 있는데도, 여기에서 참 많은 행복을 얻고 있는데도, 그런 느낌이 자꾸 찾아왔다.


며칠 전이었다.
2016년이 내게 어떤 해였나를 생각하다,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실패했구나."



그래, 실패뿐이었다.
나는 2016년을, 내 스물아홉 살의 나날들을, 그렇게 평가했다.


지식적으로도, 직업적으로도, 금전적으로도, 심지어 정신적으로도 나아진 게 하나도 없다. 오히려 몸의 경우, 일주일간 반송장이 되어야 했을 정도로 나빠졌다. 연초에 목표로 했던 것들 중 제대로 바람을 이룬 걸 도대체 찾을 수가 없다! 그나마 발전한 영역이 있다면 취미 영역뿐이지만, 그건 지금의 내게는 별로 도움이 안 된다. 미래가 없는데 취미가 무슨 소용이야? 게다가 새벽까지 와우 하느라 스케줄 컨디션 다 틀어지던 것, 가챠욕구를 못 참고 무리하게 스쿠페스 가챠 돌린 것(진짜 애냐?) 등등, 오히려 악영향 끼친 게 더 많았을 걸?



"그럼 후회하니?"
"아니."



자문과 자답 사이는, 꽤 짧은 시간이었다.

후회하지는 않는다. 정말 누가 보기에도 한심스러운 한 해였지만, 그래도 살아내긴 했잖아. 수동적으로 산 적은 있어도 삶을 포기한 적은 없었다. 우울과 무력감에 미쳐버릴 것 같은 시간들이었지만, 그래도 어떻게든 잘 버텨냈다. 다시 2016년을 살아낸다 해도 이 이상으로 잘 살아낼 자신은 없다고 하면, 너무 나약한 생각일까?
실패 투성이 한 해였지만, 또한 그걸 인내해낸 한 해이기도 하다. 힘든 하루하루를 꾸역꾸역 걸어서, 어느덧 서른이라는 나이를 마주하게 되었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나는 오히려, 내 자신을 질타하기보다 박수를 쳐줘야 하는 게 아닐까. 


잘 버텼어.
잘 살아냈어.
정말 고생했어.
정말 고마워. 내가 나라서, 참 다행이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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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2017년에는 뭘 할까.

일단 외국어 공부. 2월 말 선샤인 퍼스트가 있는데 그때까지 일본어를 열심히 공부하고, 그 이후로는 일본어와 영어를 병행. 7월에 JLPT N1에 응시할 생각이다. 영어는 일단 기초 문법을 다시 독학한 다음 어학원을 가야겠다. 자격증보다는 회화를 배우고 싶은 마음이 있다.

허황된 꿈은 잠시 접고, 현재 하고 있는 일에 집중해야겠다. 뭘 하려 해도 일단 안정적인 수입이 확보되어야 시도하기 편해진다. 직업 특성상 안정적이긴 힘들지만, 적어도 가르칠 수 있는 과목은 언제 수업 요청이 들어와도 바로 가능할 정도로 숙련되어야 한다. 지금까지 나는 이 점을 완전히 놓치고 있었다. 그 외에도 읽을 책의 리스트를 짜뒀고, 관심 있는 영역의 세미나들을 찾아보고 있다.

이번달부터 배운 수영을 내년에도 계속 하려 한다. 이건 하기 싫어도 허리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해야 하지만, 이왕 하는 거 재밌게 배웠으면 좋겠다.

그림을 배워보려 한다. 미려한 그림은 아니더라도, 2-3등신의 귀여운 캐릭터들을 그려보고 싶다. 학창시절 미술시간에 공작 빼고는 항상 C급 평가를 받았던 터라, 볼만한 그림을 그려내기까지 꽤 오래 걸릴 거다. 그래도 몇 달이고 몇 년이고 꾸준히 하다보면 어느 정도의 결과는 나오리라 기대해본다.

덕질은 체계적으로, 그러나 더 열심히 해야지. 일단 2월의 릿삐 라이브와 선샤인 퍼스트 원정이 시작이다. 아니사마나 여름 코미케를 가보고 싶은데 그건 그때 (금전적) 상황에 따라서. 스쿠페스는 이제 큰 행사 아니면 현질 없이 진행해도 큰 탈 없을 것 같다. 16년에는 완결까지 본 애니 수가 너무 적었는데, 청해 연습 겸 17년에는 조금 더 늘려야겠다.

계획을 대충 다 적어두니 할 일이 태산같아졌다. H선배는 "하나만 해도 제대로 하기 힘든데 왜 그렇게 이것저것 하려고 해. 잘못하면 죽도밥도 안된다."고 염려하기도 했다. 그 염려는 맞는 말이라고 생각하지만, 일단 뭐든 하고싶은대로 해보려고 한다. 하고싶은 걸 해야 계속할 수 있는 힘도 생긴다는 걸 알았기에 그렇다. 뭐, 의외로 적성에 맞는 걸 찾을지도 모르고, 일단 지금은 정말 할 줄 아는 게 하나도 없어서 뭐라도 더 찾아보고 싶다(...).









당연히 계획대로 다 흘러갈 리는 없지만, 마음대로 되지는 않겠지만, 힘든 일이 가득하겠지만,
기운차리고 더욱 더 발버둥쳐보자. 이제까지보다 조금 더.

2017년이 끝날 즈음에는, 지금보다 몇 걸음 더 나아간 자리에 서 있을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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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한 해 동안 제 삶을 주관하시고 인도하신 하나님께, 정말 감사드립니다. 당신께서 침묵하시고 외면하신다고 느낄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지만, 그런 때일수록 더욱 강하게 붙드시고 당신의 길로 이끄셨음을 이제야 실감합니다.

이제 몇 시간 후면 2017년이 시작됩니다. 첫 날의 시작부터 끝 날의 마지막까지, 당신과 온전히 동행하는 시간 되기를 바라고 또 염원합니다. 일의 성패를 떠나, 그것이 제가 누릴 수 있는 가장 큰 복임을 고백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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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이림/에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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