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연말단상.

일상 2018. 12. 24. 16:21

0. 2018년 1월 1일 첫 트윗은 [2018년을 시작하는 표어:「だからこそ、勝ちたい。」]였다. 러브라이브! 선샤인!! 2기 12화 카난의 대사다. 그리고 적어두진 않았지만, 그 뒤에 바로 이어지는 대사는 「今を、もっともっと楽しみたいから。」이다. 이기고 싶다는 마음이 지금을 즐기도록 해준다는 말, 한 해 동안 항상 기억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꽤 도움이 되지 않았나 생각한다. 이기긴 커녕 버티기도 힘들었지만, 정신차려보면 꽤 의미있는 한 해가 아니었을까.



1. 사회인 4년차, 가장 풍족한 한 해를 보냈다.

수입도 안정적이었고, 자취생활은 편안했다. 한 해에 일본을 세 번이나 다녀올 정도로(라이브 2회, 여행 1회) 여유가 있었다. 중견기업 이상 다니는 친구들이라면 푼돈으로 취급할 정도의 연봉이지만, 이 일로, 내 능력으로 벌어먹고 살 수 있겠다는 확신이 조금 생겼다. 이제 입에 풀칠은 가능하다. 이제  문제는 남는 게 없는 것이니, 다음 단계로 효과적인 저축 계획을 고려해야 되겠다.



2. '일용할 양식'의 '일용'의 범위가 어디까지가 항상 궁금하다. 나는 신께 어디까지 간구해야 하는 것일까. 내게는 어디까지 허용되어 있는 것일까. "까짓거 돈 없으면 없는 대로 살지 뭐"라고 생각했던 학생 시절의 내가 있었다. 플랜A나 플랜B의 2배 이상을 벌고 있는 지금도 부족한 것 투성이인데, 그때의 나는 용감했던 걸까 아니면 무식했던 걸까. 지금의 나는 겁을 먹은 걸까 아니면 뭘 좀 알게 된 걸까. 나는 여전히 돈이 사람을 행복하게 하지 않는다고 믿는다. 그렇게 믿고 싶다는 표현이 더 정확할지도 모르겠지만.



3. 수영은 빠지는 날이 늘었으나 어쨌든 가고 있다. Aqours 4th 라이브 전후로 바쁘고 아파서 거의 못 갔는데, 조금 불안해져서 허리가 아프지도 않은데 물리치료를 받곤 했다. 주3회 운동의 원대한(?) 꿈은 점점 멀리 날아가지만, 이틀은 어떻게든 사수해야지.



4. 예나 지금이나 한 달에 적어도 두 권은 새로운 책을 읽는 게 목표지만, 일이 바빠지고 서브컬쳐 덕질에 힘쓰다 보니 점점 독서에 손을 놓게 된다는 걱정이 있다. 올 한 해 읽은 책이 별로 없다. 정확히 세지는 않았지만 아마 작년 독서량의 절반 이하일 것인데, 그마저도 기억에 남는 게 그다지 없다는 건 심히 유감스러운 일이다. 작년만 해도 「정통」이라던가 「오독」, 「한나의 아이」 같은 충격적인 책들이 내 옆에 있었다. 그에 비하면 올해에는... 읽기 전 잔뜩 기대했던 래리 크랩의 「행복」은 지루하고 형편 없었으며, 「특강 이사야」는 성경 본문을 보지도 않고 주석서를 읽어내려는 태도와 JLPT를 준비해야 한다는 압박감에 그만 중도에 손을 놓아버렸다. 그 외 신학서적 중에서도 마음에 남는 책은  없었다. 그나마 「한국은 하나의 철학이다」와 「아픔이 길이 되려면」 같은 일반 교양서적들이 특정 주제에 대한 기존 인식을 조금 바꾸는 데에 도움을 주었다. 19년도는 책 많이 읽어야지.



5. 신중함, 철두철미함, 섬세함을 지향하는 성격이건만, 누군가에게는 이것이 지나친 진지함, 까탈스러움, 민감함으로 보일 때가 적지 않다. 나는 내가 지향하는 바가 반드시 이 세상에 필요하다고 생각하지만, 그렇다고 후자의 목소리를 외면하는 것은 내 발전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 주제가 무엇이든 화를 낼지언정 대화를 포기하지는 않기를 나 자신에게 바란다.



6. 멘토가 죽었다.

이것이 올해 일어난 일 중에서 가장 큰 일인데, 물론 그는 지금도 생물학적으로는 멀쩡히 살아있다. 그저 내게 멘토로서의 가치가 끝난 것이다. 오랜 세월 "그를 존경한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는데, 이제는 생각조차 하기 꺼려진다. 이렇게 뒤돌아서는 것은 얼핏 순식간의 일 같지만, 생각해 보면 실은 그 전부터 그 사람의 실체를 체험하고 실망하는 과정이 반복되어 온 것이 어느 특정한 시점에서 터져나오는 것이다. 이제까지 나는 간간이 드러나는 그의 추한 모습을 정상참작('에이 사람이 어떻게 완벽할 수 있겠어!')이라는 명목 아래 포장해 왔을 뿐이다. 마지막으로 나눈 대화는 꽤 화기애애하게 끝났지만, 내가 그 사람에게 가졌던 최후의 기대, '그래도 좋은 의도가 있으니 저러는 거겠지'라는 생각은 완벽하게 박살이 났다. "모두를 행복하게 만들고 싶다"고 그는 입버릇처럼 말했지만, 이제는 그의 말이 진심인지 믿을 수 없다. 설령 진심이라 하더라도, 그의 사고방식·행동양식이 그가 하는 말과는 너무나 동떨어져 있다.

뭐, 사람이 스스로를 착각하는 것은 특이한 일이 아니다. 히틀러도 자기 나라는 잘 되기를 바랐고, 윤서인도 스스로를 애국자라고 여긴다. 여하튼 나는 저렇게 이기심과 자아과잉의 표상이 되기는 싫다. 그렇게 되지 않기 위해 노력할 필요가 있다.



7. 어쨌든 멘토는 죽었고, 그의 꿈은 더 이상 내 꿈이 아니며, 나는 내 꿈을 나 혼자 품고 걸어가야 하는 상황에 처했다. 2019년에도 그 꿈들을 키우고, 다듬으며 시간을 보내겠지만, 지금까지의 시간과는 분명 큰 차이가 있을 것이다. 긴 세월간 믿어왔던 정답이 또 하나 부재하게 된 오늘, 고개를 돌려보니 컴퓨터 옆 코르크 보드에 붙여둔 하우어워스의 글이 보였다.


"내가 볼 때, 그리스도인으로서 사는 것은 답 없이 사는 법을 배우는 과정이다. 이렇게 사는 법을 배울 때 그리스도인으로 사는 것은 너무나 멋진 일이 된다. 신앙은 답을 모른 채 계속 나아가는 법을 배우는 일이다. 문제를 지나치게 단순화시킨 것이긴 하지만, 적어도 이런 주장은 그리스도인으로 사는 것이 내게 지독히도 흥미진진하게 다가오는 이유를 이해하게 해 준다."



(추가)

8. 어제(12/30) 신기한 말을 하나 들어서 그거에 대해 적어두려 한다.

우리 교회 청년부에서는 예배가 끝나고 조별모임을 가진다. 같은 조의 한 성도가 유학을 가게 되었다. 가기 전에 그가 각 조원들에게 한 마디씩 해주는 시간을 가졌는데, 내게 대해 이야기할 차례가 왔다. 그다지 친하지도 않고 이야기를 많이 나눈 적도 없어서 그냥 간단히 인사하고 끝날 거라 생각했는데, 전혀 뜻밖의 이야기가 나왔다.
"정말 고마워요, 이림 형제님. 그간 조별모임에서 나눠주신 말씀이 너무 좋았어요. 실제 삶에서 우러나오는 이야기들에 정말 많이 공감했고, 올해 힘들 때 형제님의 말이 큰 위로가 됐어요."

옆의 조장도 한 마디 거들었다.
"말씀 나누는 시간에 이림 형제님이 제가 미처 보지 못한 부분까지 세세히 알려주셔서 너무 좋았어요."

'나눠준 말씀이 좋았다' 라는 말. 교회에서 흔히 들을 법한 말인데도 내게 꽤나 의외성 있게 다가온 이유는, 올 한 해 내가 조모임에서 나눈 이야기가 대부분 "하나님이 어디 계신지 못 찾겠다."로 시작해서 "그래도 우리는 그분 뜻대로 살아야 한다."로 끝났기 때문이다. 평신도 입장에서는 흔히 다루지 않는 주제다. 되려 왜 그렇게 칙칙한(?) 믿음을 갖고 사냐고 핀잔도 들을 법한 말인데도, 생각보다 공감해주는 사람이 많았다. 신기했다. 역시 다들 신의 침묵을 느낀다는 걸까. 이렇게 힘든데, 왜 당신은 나를 안 도와주시나요.

「나니아 연대기 - 은의자」의 등장인물 퍼들글럽은 자신을 "항상 최악의 것을 생각하고 그 다음 최선을 다 하려는 사람"으로 정의하며, 지하세계의 마녀에게 "설령 아슬란설령 나니아가 존재하지 않아도, 난 나니아인답게 살겠다"고 선언한다. 최근 몇 년간 내가 생각하는 삶의 양식은 분명 이와 비슷하다. 신은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그래도 그리스도인 답게 살아야 한다. 정의와 평화가 이 땅에 넘치게 되도록 살아야 한다. 그분의 부재, 그분의 침묵을 경험하면서도, 그분이 계신 듯 최선을 다해 살아야 한다. 이렇게 생각해 보니 어쩌면 이 영역이야말로, 인간이 가장 순수하게 자유의지를 행사하는 곳이 아닐까 싶다.

나는 이제 갓 서른을 넘긴 애송이에 불과하지만, 학생시절 당연하듯이 가졌던 생각들이 하나하나 무너지는 걸 경험한 바가 있다. 이번 2018년에도 많이 그랬고, 2019년에도 분명 그런 순간이 찾아올 것이다. 실망감에 냉소할 수도 있고, 침묵에 원망을 쏟아부을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한 줄기 신념을 찾고 그것을 지킨다는 행위가 하루하루를 살아갈 원동력을 줄 것이라 믿는다. 신념 따위 아무래도 좋을 것 같은 이 세상에서 보기에는 지극히 이상하겠지만... 뭐, 퍼들글럽도 초반부에서는 참 비호감 인물이다. 그러려니 하고 살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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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이림/에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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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年末斷想.

일상 2017. 12. 28. 12:57

0) 2016년을 마무리하며 적은 글을 다시 읽어보았다. 이제 와서 보니 한 문장 한 문장이 우습고 부끄러워 차마 고개를 들 수가 없다. 그냥 실패했다는 이야기에 무슨 그리 폼을 잡으려고 난리였는가, 난데없이 왜 그림을 배우겠다고 공언했는가, 무엇이 즐거워서 그리 희망을 외쳐대었는가 같은 물음이 머리를 스친다. 아마도 지금도 그다지 나아진 게 없어서 그러리라.



1) 2017년에 가장 열심히 한 일이 무엇인지 생각하면 역시 Aqours를 따라다닌 시간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물론 따라다녔다고 했지만 이벤트를 자주 간 건 아니다. 그래도 국내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어떻게든 해보려고 했고, 굿즈 구매에 대해서도 이전보다 훨씬 더 지출한도를 높였으며 또 그 이상의 관심을 쏟아부었다. 당장 내 책상 옆에서 굴러다니는 선샤인 BD 케이스와 모니터 위에 걸린 아쿠아 아크릴 키홀더들이 서이림의 2017년이 어땠는지를 말해주지 않는가. 물론 그렇다고 후회하는 것은 아니며, 아니 오히려 아쿠아 덕분에 2017년을 살아낼 수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2월의 1st 라이브(+누마즈 여행), 8-9월의 2nd 라이브(+당시 진행에 참여한 화환 프로젝트), 애니 2기, 내한 팬미팅, 기타 니코나마나 인터뷰 등등에서 얻었던 감동과 기쁨과 즐거움은 하루종일 이야기해도 다 풀어내지 못하리라. 참으로 뜨거운 2017년이었다.



2) 일본어 공부를 이전보다 더욱 열심히 했다. 공부를 했다기 보다는 잡지와 웹에서 일문을 보며 사전을 뒤져가며 해석했던 것, 아쿠아 클럽에서 일어 메시지를 보내기 위해 골머리를 앓은 것 정도지만. 그래도 익숙한 어휘가 하나 둘 생기기 시작했고 독해나 작문이 약간 수월해진 걸 느낀다. 물론 보는 애니와 잡지가 다 '그쪽'이라서 이러다가 여고생 말투 쓰는 오지상이 되는 게 아닐지 걱정이 앞서긴 한다. 준비하는 일이 좀 마무리 되면 비지니스 일본어라도 수강해야 할까...



3) 1년간 수영을 계속 다녔다. 감기나 기타 컨디션으로 1-2주 쉴 때도 있었고 애초에 주2회 강습이라 그렇게 성실했다고 보긴 힘들지만 어쨌든 그만두지는 않았다는 점에서 자찬할 만하다. 뜰판 없이 자유형이 가능하게 된 건 강습 4개월 즈음부터. 그 전까지는 고개를 돌려도 계속 물 속이라 숨을 쉴 수가 없었다. 어찌저찌 계속 버텨서 상급반까지 올라오긴 했지만 체력이나 수영 속도는 뒤에서 두세 번째를 찍는다. 젊은 사람이 왜 그러냐는 핀잔을 들으면 허허허 웃을 뿐이다. 그래도 상대적 기준이 아닌 절대적으로 보자면 체력과 지구력이 꽤 붙은 게 느껴진다. 오래 운전하면 고관절이 쑤시던 증상이 사라졌다. 1년 전 나를 죽일 것 같았던 요통도 최근에는 거의 찾아오지 않는다. 다만 안 좋던 유연성은 오히려 더 나빠지는 상황이라 이를 보완할 방도가 시급하다. 요가라도 해야 하나 고민중이다. 어쨌든 좋아지는 방향으로 가고 있으니 지금 하는 이것을 포기하지 말자고 다짐했다. 자유수영도 좀 더 열심히 다니고...



4) 일은 입에 풀칠할 정도는 하고 있다. 일하는 지역이 본가 근처라고는 해도, 서른이 넘었는데도 불구하고 부모 곁을 떠나지 못하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이것은 마땅히 가져야 할 부끄러움이다). 9월 전후로 수업이 대거 끊기는 바람에 잠깐 어려움이 있었으나 지금은 조금 회복되었다. 다만 예나 지금이나 내 또래와 비슷한 수준으로 벌려면 많이 멀었다. 나름 아껴쓴다고 하지만 내가 봐도 수입에 비해 취미에 쓰는 돈의 비율이 굉장히 높다. 저축은 꿈도 못 꾼다. 가난에 대해 많이 묵상한다. 안정적인 수입원을 가진 사람이 부럽고, 나도 그렇게 되길 바라지만, 그래도 돈을 행복의 기준에 포함시키지는 말자고 다짐하고 또 결심한다. 공자가 그랬고, 예수가 그랬고, 내가 읽어온 책의 저자들이 하나같이 다 그렇게 주장하고 있기 때문에.



5) 8월 즈음에 한 선배님께 일 관련으로 꽤나 크리티컬한 말을 듣고 나서 자괴감에 빠지기도 했지만, 어쨋든 그 덕분에 갈팡질팡하던 마음을 가다듬고 회심의 일격(?)을 하나 준비하게 되었으니, 어떤 의미로 다행이라 할 수 있겠다. 통할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간바루비!



6) 길고 복잡한 생각을 하기 힘들다. 무슨 병이라도 있는 건지 그냥 심란해서 그런 건지. 아무튼 내년에는 좀 더 나아지길 바란다. 맨 위에서 작년의 글이 한껏 희망에 부풀었었다는 게 부끄럽다 적었지만, 이 짧은 생각들을 끝마치는 이 시점에서도 가능한 한 희망에 젖고 싶다. 돌아보면 지지부진해도 어쨌든 나아진 게 있긴 하니까. 펄쩍펄쩍 뛰어가지는 못해도 한 걸음씩 천천히 나아가는 건 가능할지도 모른다. 그래도 분명 괜찮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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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이림/에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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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속): 속독, 빠르게 훑어 읽음.

※ (재): 재독, 이전에 완독한 책을 다시 읽음.






1. 이한승, 「솔직한 식품」, 창비




(속)2. 리처드 서스킨드 & 대니얼 서스킨드, 「4차 산업혁명 시대, 전문직의 미래」, 와이즈베리




(속)3. 존 H. 월튼 외, 「창조 기사 논쟁: 복음주의자들의 대화」, 새물결플러스




4. 이원석, 「서평 쓰는 법」, 유유




5. 톤 텔레헨, 「고슴도치의 소원」, arte




(재)6. 필립 얀시, 「하나님, 당신께 실망했습니다」, IV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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