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의 독서노트.

독서노트 2017. 3. 30. 21:14

1. 「어쩌면 내가 가장 듣고 싶었던 말」


 개인적으로는 소위 '힐링용 책'을 잘 읽지 않는다. 소싯적에 워낙 많이 읽어대기도 했지만, 기분만 좋아지고 그다지 얻는 건 없다는 이유가 컸다. 하지만 최근에 마음이 계속 울렁거려서 어떻게든 진정시킬 필요가 있었고, 그 안정제로 서점 도서대 맨 앞에 진열되어있던 이 책을 냅다 선택했다. 생각없이 고른 책이었으나 효과는 꽤 좋았다. 어찌보면 당연한 이야기들로 가득했으나 그것이 좋았다. 나는 그 당연한 걸 잊고 살아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날 나는 최 선생님을 통해 인생에 중요한 갈림길이 될 만한 '결정적 순간'이 존재한다는 오해를 풀었다. 인생이란 어느 한 순간에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오랜 기다림이며, 가장 나다운 나와 만나는 먼 여정임을 이해했다.

 ...누군가에게 꼭 필요한 사람이라고 인정받아야 '쓸모' 있는 인간이 되는 것이 아니라, 내가 꼭 필요한 존재라는 확신이 있어야 '잘 쓰이는' 삶을 살 수 있다. 그 확신은 자신을 믿고, 재능이 꽃필 시간을 기꺼이 기다려 주는 일부터 시작된다." (p.45-46)







2. 「함부로 말하는 사람과 대화하는 법」


 '대화하는 법'이라기보다는 '대처하는 법'이란 말이 더 어울리는 책이 아닐까 싶다. 말이 전혀 안 통하는 사람들과 어떻게 대화해야 할지를 적었는데, 공격적인 말을 유머로 받아치거나 흘리라는 조언도 더러 있었으나 맞받아치는 방식의 조언이 훨씬 더 많았다. 함부로 말하는 사람들은 애초에 불공정한 규칙 아래에서 대화를 시작하기 때문이라는 것이 필자의 이야기였다. 맞는 이야기다. 특히 트위터나 페북 등 SNS에서 이뤄지는 대화의 상당수가 말이다.

 '세상에는 정말 못된 사람이 존재하고, 그들 중 일부는 내 주위에 있다.' 이 책을 읽으며 새삼스레 느낀다. 그런 사람들에게 더 이상 상처받지 않고, 또 그런 사람들과 같이 되지 않기를.


 "세상에는 악인도 있지만 도덕적이 인간이 훨씬 많다. 두 부류는 공존할 수밖에 없다. 결국 가장 현명한 태도는 회의론도 이상론도 아닌 '세상의 이치를 깨달은 선한 인간'으로 거듭나는 것이다. 세상의 이치를 깨달은 선한 인간이란, 세상이 선한 인간들로만 이루어져 있지는 않다는 사실을 알지만 그럼에도 인간의 선함을 믿는 존재이다." (p.259)

 "나쁜 상황은 분명 일어날 수 있지만 그래도 삶을 되찾기 위해 무언가 할 수 있다. 이것이 이 책의 핵심 메시지이다." (p.271)







3. 「나를 넘어서는 성경읽기」


 2년간 격월로 월간QT잡지에 실었던 열두 개의 글을 묶은 책이다. 저자의 이전 저서인 「특강 예레미야」를 읽고 푹 빠졌었는데 이번 책도 역시나 좋았다. 나 중심의 이기적인 성경묵상과 해석을 넘어 원문의 본뜻과 이 시대에의 올바른 적용법이 어떻게 찾을지 간략한 예시를 들어 설명했다. 특히 저자의 전공이 구약학이라 한국 교회에서 많이 무시되던 구약 이야기를 많이 다룬 면이 신선했다. 본디 잡지에 실린 글이었기에 그 특성상 깊고 전문적인 지식을 다 넣지 못하고 살짝살짝 맛만 보여주는 느낌이라 조금 아쉬웠으나, 그만큼 모두에게 쉽게 읽힐 수 있는 참 훌륭한 책이라 생각한다. 한국 교회 신자들이 이 책을 읽고 성경묵상 방법이 조금만 바뀌어도 아마 삶과 신앙의 많은 부분이 바뀌지 않을까.


 "불의한 세상을 향한 예언자의 비판은 온데간데없이 언제나 자신의 마음속만 들여다보는 그리스도인과 교회는 독재 권력과 부패한 권력에게 최상의 종교일 수밖에 없다." (p.117)

 "'나를 넘어서는 성경읽기'는 성경이야말로 끔찍하고 힘겨운 현실의 유일한 대답임을 믿는 데서 출발한다 .그리고 마치 우리가 아무 욕망도 없는 사람인 것처럼 읽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있는 그리고 이 세대가 조장하는 욕망을 인정하면서 성경을 읽는 것이기도 하다." (p.182)






4. 「우리는 모두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합니다」


 이전에 읽은 페미니즘 관련 책에서는 책 곳곳에 공격적인 태도들이 보여 흠칫흠칫하곤 했다(그 태도가 옳은지 그른지는 제쳐두고). 하지만 이번 책은 얇기도 하고 내용도 그리 많지 않아 마음 편히 읽을 수 있었다. 아니 정확히는 '유쾌했다'. 역시 운동에는 유쾌함이라는 요소가 빠져서는 안 되는 것일까. 이 책이 페미니즘의 모든 면면을 보여주진 않았지만, 읽고 나서는 나 자신이 페미니스트가 되기를 희망할 수 있었다. 적어도 이 책에서 정의하는 대로라면 말이다.


 "나는 페미니스트를 이렇게 정의합니다. 남자든 여자든, 맞아, 오늘날의 젠더에는 문제가 있어, 우리는 그 문제를 바로잡아야 해, 우리는 더 잘해야 해, 하고 말하는 사람이라고요. 남자든 여자든, 우리는 모두 지금보다 더 잘해야 합니다." (p.52)






3월에는 힐링(...)을 하느라 얇고 편한 책들만 읽은 경향이 있다. 4월에는 전문적인 서적을 읽을 수 있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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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는 그야말로 안전제일주의자입니다. 사랑을 반대하는 모든 주장 중에서 제 본성에 가장 크게 호소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조심하라! 그것이 너를 고통에 빠뜨릴지도 모른다"는 말입니다.

 제 본성과 기질에는 호소합니다. 그러나 제 양심에는 그렇지 않습니다. 그러한 호소에 응할 때면, 저는 제 자신이 그리스도와 수천 마일 떨어진 느낌이 듭니다. 제가 확신하는 한 가지는, 그분의 가르침이 안전한 투자와 유한책임을 좋아하는 저의 선천적 선호도를 결코 인정해 주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마음이 부서지는 일이 없도록 하는 것이 우리의 최고 지혜라고 한다면, 일단 그렇다고 가정한다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그런 지혜를 제공해주시는 분일까요? 그렇지 않음이 분명합니다. 그리스도께서도 결국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라고 외치시는 자리까지 가셨습니다.

 안전한 투자란 없습니다. 사랑한다는 것은 상처받을 수 있는 위험에 자신을 노출시키는 행위입니다. 무엇이든 사랑해 보십시오. 여러분의 마음은 분명 아픔을 느낄 것이며, 어쩌면 부서져 버릴 수도 있습니다. 마음을 아무 손상 없이 고스란히 간직하고 싶다면, 누구에게도 마음을 주어서는 안 됩니다. 그것을 취미와 작은 사치로 조심스럽게 감싸 두십시오. 또 모든 얽히는 관계를 피하십시오. 마음을 당신의 이기심이라는 작은 상자 안에만 넣어 안전하게 잠가 두십시오. 그러나 그 작은 상자 안에서도 그것은 변하고 말 것입니다. 부서지지는 않을 것입니다. 깨뜨릴 수 없고 뚫고 들어갈 수도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구원받을 수 없는 상태가 되고 말 것입니다. 비극을 피할 유일한 길은 영혼의 멸망입니다. 천국을 제외하고, 여러분이 사랑의 모든 위험과 동요로부터 완벽하게 안전할 수 있는 유일한 장소는 지옥뿐입니다.

 우리는 모든 사랑에 내재해 있는 고통을 피하려고 애씀으로써가 아니라, 그것을 받아들이고 그분께 바침으로써 하나님께 더 가까이 다가가게 됩니다. 만일 우리 마음이 부서질 필요가 있다면, 만일 그것이 그분이 선택하신 방법이라면, 우리는 기꺼이 그 길을 감수해야 합니다.


- C. S. 루이스, 「네 가지 사랑」, 홍성사, 205-20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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ㄹ혜와 후배 J.

일상 2017. 3. 14. 01:22

내가 아직 대학을 다닐 2012년 무렵, 동아리에 J라는 후배가 있었다. 뭘 해도 똑소리나게 했던 J는 상당한 박ㄹ혜 빠였다. 정치얘기만 나오면 ㄹ혜 칭찬하기에 여념이 없었고, 대선에서 ㄹ혜가 당선되었을 때는 "역시 국민들이 현명한 선택을 했습니다."라고 말할 정도였다. 별달리 친해질 구석이 없어 그저 그런 사이로 지내다가 졸업 후에 소식이 끊겼다. 사실 카톡상으로는 아직도 친구지만, 오랜 세월 전혀 대화 없이 지낸 까닭에 이제는 새해 인사 한 마디 하기도 서먹하다.


지난 몇 년 간 ㄹ혜 관련으로 참 많은 사건이 있었다. 나는 간간히 광화문에 가고, 촛불을 들고, 주변인들과 정치 얘기를 하곤 했다. 그럴 때 가끔씩 "J는 지금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라는 궁금증이 문득 들곤 했다. 카톡으로 물어보면 됐지만 그러고 싶지 않았다. 갑자기 묻기에 서먹한 관계이기도 했지만, 아무리 예상해봐도 무슨 답변이 튀어나오든 그걸 듣기가 너무 무섭기 때문이 더 컸다.


장장 4년의 시간이 흘러, 드디어, 드디어 ㄹ혜를 내쫓았다. 나는 정말로 울며 뛰며 날듯이 기뻤지만, 왠지 모르게 자꾸 J 생각이 났다. J는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J는 지금 ㄹ혜가 탄핵당하고 청와대를 나가는 걸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뭐 생각이 있는 아이였으니 일찌감치 생각을 바꿨을까? 아니면 여전히 지금의 박사모와 똑같은 논리를 펴고 다닐까? 혹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혼란스러워 하고 있을까?


그런 의문이 들며, 한 번 J와 얘기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친구의 현재 스탠스가 어떻든 간에 말이다. 상당히 격정적인 나로서는, 이런 얘기를 할 때 보통 이것저것 조언을 하기 바쁘거나 맹렬히 비난을 쏟아붓곤 하지만, 유독 J에게만은 그러고 싶은 마음이 그다지 들지 않는다. 내가 뭘 한 게 있다고 J 앞에서 잘난척 하겠는가. 애초에 '이쪽 편'에 서 있던 사람으로서 유세떨고 싶지도 않고, 만약 아직 박사모 수준의 생각을 가졌다고 하더라도 비난하며 놀리고 싶지도 않다. 혼란스러워한다고 해서 앞장서서 조언해주고픈 마음도 없다. 그저 그때 어땠는가, 지금은 어떤가. 생각이 변했다면 왜 그렇고, 안 그렇다면 왜 그런가.... 그저 담담히 그런 얘기를 듣고 싶을 뿐이다.


카톡 대화창을 몇 번 열었지만, 결국 물어볼 생각을 접었다. 무서워서라기보다는, 문자로는 대화하기 힘든 주제라 생각해서다. 역시 이런 얘기는 얼굴을 맞대고 해야 한다. 언젠가 길거리에서 J와 우연히 마주친 날에, 반가운 마음으로 커피 한 잔과 함께 진한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생각해보니 J는 핸드드립도 할 줄 알았다. 만약 다시 만나게 된다면 대학시절 J가 내려줬던 맛있는 커피를 또 얻어먹을 수 있을까. 그 생각에 괜시리 웃음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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