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6박 7일 여행의 메인 코스, 에미츤과 후리링의 고향, 나가노 성지순례를 시작했다.

「長野ノススメ」에 나온 곳들과 노조호노 산보에 나온 장소들을 참고하여 여행 계획을 세웠다.

나가노 성지순례 첫째 날은 시노노이선을 따라 시노노이, 마츠모토, 시오지리를 다녀오는 것이 목표였다.

 

 

새벽 6시경 숙소 체크아웃으로 하루를 시작.

집 아니고서는 잠을 잘 못 자는 편이라 한 3시간 잤나 모르겠다.

패스에 오늘자 도장을 찍고 나가노행 신칸센을 타러 도쿄역으로 ㄱㄱ.

 

 

서둘러 도착한 도쿄역, 아직 신칸센 출발 시간까지 40분 넘게 남아서 지정석 예약을 하려고 창구에서 엄청 기다렸는데 역무원 왈,

"예약이 꽉 찼습니다. 그거(패스) 들고 그냥 자유석 타세요."

....아 맞다 일본은 오늘 연휴 첫날이었지 ㅠ

 

할 수 없이 자유석을 타려는데, 여기서 엄청난 삽질,

종착지를 착각하는 바람에 호쿠리쿠 신칸센을 타야 할 걸 같은 선로의 죠에츠 신칸센으로 잘못 탔...

다행히 열차가 출발한 직후에 깨닫게 돼서 니이가타까지 가진 않았고(...)

오오미야역에서 내려서 그 다음에 오는 나가노행 신칸센을 탔다.

하지만 이미 만선인 신칸센에 자유석 자리가 있을 리가 없는데다 심지어 서 있을 자리도 없어서 몇 호인지도 모를 차량 문 앞에 서 있어야 했고, 그나마 쭈그려앉아도 될 정도로 공간 여유가 난 건 카루이자와를 지나고 나서였다 (...)

 

그래도 루비쨩이 있어서 간바루비 했다요!

 

 

 

나가노 도착!

코인락커에 캐리어를 밀어넣고 역내 카페에서 아침식사.

역 1층에는 스타벅스도 있더라. 와아 나가노는 도시구나 (?)

 

 

곧이어 오는 시나노 특급을 타고 시노노이역에 도착.

내리자마자 역무원이 표 검사를 했다. 당연했다. 특급 열차(그것도 지정석)를 타고 한 정거장 만에 내리는 놈은 세상에 없으니까. 나 같이 패스를 가진 놈 빼고는 (...)

 

 

역은 한산하고 조용했다. 어제부터 사람이 득실득실한 것만 보다가 간만에 조용한 곳으로 오니 마음이 평안해졌다.

 

 

「ZOOぐる」버스.

챠우스야마동물원의 셔틀버스로, 시노노이역과 동물원을 왕복하는 "유일한" 대중교통수단이다. 왕복 300엔.

나이가 지긋한 기사님은 따뜻한 인상의 친절하신 분이었다. 내릴 때쯤 공룡원 가는 길을 묻는 내게, 어디로 어떻게 가라고 다 알려주셨다.

 

챠우스야마공룡원 도착!

「長野ノススメ」에 나온 곳으로, 시대별로 여러 공룡들의 모형이 있는 곳이다.

셔틀버스를 타고 가다가 동물원북쪽출구에서 내리니, 고생대 공룡 몇 마리가 나를 반겨주었다.

이때만 해도 사람이 단 한 명도 보이지 않아 누구에게 길을 물어볼 수도 없어서, "이제 여기서부터 쭉 올라가면 시대별로 나오겠지"하고 위쪽 길을 따라 올라가기 시작했다.

 

그런데 어째 위로 올라가고 올라가도 몇몇 놀이기구만 보일 뿐 공룡 모형은 안 보이는 것이었다.

산에서 바라보는 시노노이 전경은 멋지긴 했지만...

 

 

그러다가 큰 길이 나왔고, 마침 맞은편에서 아까 그 셔틀버스가 오고 있었다.

정류장도 아닌데 버스가 서더니, 기사님이 웃으며 인사하셨다. 공룡원을 간다던 사람이 어쩌다가 여기까지 왔냐고.

내가 길을 묻자, 공룡원이 어느 방향인지 친절히 설명해주셨다.

일본어가 딸려서 제대로 듣지를 못했지만 (무더위에 산을 올랐더니 정신이 없기도 했고) 아무튼 내려가야 하는 것은 확실했다. 다시 버스에서 내렸던 곳으로 내려가보기로 했다.

 

 

그렇게 내려가니까 고생대 지역 바로 길 건너 아래쪽으로 공룡원 입구가 보이더라. 

 

What...the... 고개만 돌렸으면 발견했을 팻말을...

그렇게 약 40분 정도를 산행과 삽질로 말아먹고 -_-;

입구 근처 화장실에서 선크림을 고쳐 바르고 본격적인 공룡원 순회 시작.

 

공룡원에서는 몇몇 부모들이 아이들을 데리고 산책을 하고 있었다.

공룡원 공룡들은 낡긴 했어도 충분히 잘 꾸며져 있어 아이들이 공룡 체험을 하기에는 더없이 안성맞춤이었다.

공룡 앞 팻말에는 공룡의 이름과 계통, 식생 등의 설명이 잘 적혀있었다.

 

몇몇 거대한 공룡의 몸통과 꼬리는 이런 식으로 미끄럼틀로 활용되기도 했다.

 

 

「長野ノススメ」에 실린 에미츤 사진과 똑같은 포즈로 한 장.

나도 어릴 적에는 트리케라톱스를 제일 좋아했었다. 초식동물로서 폭군 티라노에 맞서는 그 느낌이 왠지 좋았던 것 같다.

 

아까의 삽질로 버스 시간을 맞추기는 글렀기에 (실은 시간 맞추려고 정류장쪽으로 뛰어올라가다가 지쳐서 포기), 바로 근처에 있던 공원 쉼터에서 잠시 휴식하며 선크림을 한 번 더 고쳐 바르고 수분을 보충했다.

세수를 하는데, 과장 좀 보태서 손이 데일 정도로 얼굴이 화끈화끈하더라. 아직 11시도 안 되었을 때인데 기온은 35도가 넘어있었고, 온몸은 이미 땀으로 절어있었다. 건물의 에어컨 바람이 얼마나 좋던지...

 

 

시간이 되어 다시 버스정류장으로 올라갔다. 버스를 탔고, 아까 그 기사님은 또 웃으면서 맞이해주셨다.

시노노이역으로 가는 길은 온통 사과밭이었다. 마침 승객이 나밖에 없었기에 맨 앞자리에 앉아서 기사님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여기 산에서 보는 시노노이의 야경이 정말 좋다, 나가노에는 좋은 온천이 많으니 꼭 들렀다 가라, 이쪽은 사과가 명물이고 마츠모토쪽은 포도가 맛있다, 요즘 복숭아가 제철이니 꼭 먹고 가라 등등. 나는 한글은 꽤 배우기 쉽다 같은 이야기를 했다. 어쩌다 나온 이야기인지는 기억이 안 나지만.

 

"혼자 여행을 왔는데 이렇게 일본어를 잘 못해서 큰일이에요. 손짓발짓 다 해야만 대화가 될 정도니까요."

"뭐, 그걸로 좋지 않나요? 여행이란 게 그런 거죠."

"그렇네요. 아주 좋습니다."

 

유독 이 대화가 기억에 남는다.

 

 

시노노이역 서쪽 출구의 전경.

기사님과 작별인사를 나눈 뒤 역 반대편으로 걷기 시작했다.

 

역 동쪽 출구로 내려간 뒤 기찻길을 옆에 끼고 북쪽으로 계속 걸어갔다.

약 15분 정도의 짧은 시간이었지만 35도의 무더위에 찌는 듯한 습도 속에서 그늘 하나 없는 길이 계속...

 

살려줘...

햇볕이 너무 따가워서 아까 벗었던 긴팔 셔츠를 다시 걸치고, 지속적으로 물을 마셔가며 계속 걸었다.

 

 

에미츤의 모교로 알려진 시노노이 고등학교 도착.

한창 부활동으로 바쁜 학생들 몇몇이 오가고 있었다. 이상한 취급 안 당하도록 조심조심...

학교에 외부인이 침입하는 건 나로서도 껄그럽기에, 학교 밖으로 한 바퀴를 돌았다. 학교가 꽤 컸다. 학교 옆 별관에서는 오케스트라 밴드의 연주가 들려왔고, 뒤쪽 경기장에서는 축구 경기가 한창이었다. 이 날씨에 잘도 뛰는구나 (...)

 

다시 시노노이역으로 돌아온 뒤 바로 오는 시나노 특급을 타고 마츠모토역으로 이동.

이제 겨우 오전 일정을 끝냈는데 너무 지친 상태.

아까 공룡원에서 삽질만 안 했어도 역 앞에서 여유롭게 점심을 먹고 들어갔을텐데 으....

 

 

마츠모토역 도착!

역 근처의 소바집에서 점심을 먹었으나 그다지 맛은 없었다.

신슈소바의 명성 어디 갔냐...

 

역 동쪽 출구로 나와서 20분 정도 걸으니 마츠모토성이 나왔다.

 

 

입장료를 내고 성내로 들어갔다. 대기하고 있는 사람이 많아서 30분은 족히 기다려야 했지만, 여기까지 온 이상 안 들어가기도 좀 아쉬웠다. 성 내부는 기묘한 구조라 생각보다 재밌었다. 전국시대 유물도 적잖이 있어서 잘 보고 나왔다.

 

 

마츠모토역으로 돌아가는 길에 뜬금없이 있던 약수터. (정말 길 한복판에 덩그러니 있었음)

신기해서 한 모금 마셔봤는데, 이가 시릴 정도로 시원했다. 무더위 속 한 줄기 위안...

 

또 시나노 특급을 타고 이번엔 시오지리역 도착. 열차시간은 계속 체크했었지만 꼭 특급을 탈 생각까지는 안 했는데, 이 점에서는 운이 좋았다. 이곳에서는 후리링 관련 성지순례를 할 터였다.

 

 

서쪽 출구로 나와서 이번 목적지인 슌사이카를 향해 계속 걸었다.

역에서 나오는 길에는 이렇게 포도나무가 마치 우리나라의 등나무처럼 심겨있었다.

 

 

가는 길마다 포도밭 일색이었다.

여행 오기 전 조사할 적에 보니 이 근처에 와이너리가 많았는데, 괜히 그런 게 아니었구나.

 

 

역에서부터 30분 가까운 시간을 걸어서 슌사이카에 도착.

나가노 전통 풀빵인 오야키를 파는 곳이다. 후리링이 여기에서 파는 오야키를 트윗한 걸 계기로, 이렇게 루비일색이 되어 러브라이버들을 반겨주고 있다.

카운터에 계시던 점원님(사장님이신가?)과 오야키에 대해 소개받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한국에서 왔다고 하니, 굉장히 신기해하셨던 것 같던.

 

본래는 슌사이카에서 10분 정도 걸어가면 나오는 와이너리도 다녀올 생각이었으나(성지는 아님), 시간이 계속 딜레이되어 어느덧 문 닫을 시간이 되어서 미련 없이 시오지리역으로 복귀.

 

역 동쪽 출구로 나와보니 이런 관광센터가 있었다. 아예 지역 이미지를 포도와 와인으로 내세우고 있다는 걸 이때서야 깨달음. 앉아서 쉴만한 곳도 있어서 잠깐 구경하고 나왔다.

 

역에서 북동쪽으로 올라가면 나오는 시오지리시가쿠칸 고등학교.

후리링의 모교(로 추정되는 곳)이다. 오후 5시를 넘겼는데도 오가는 학생들이 한두 명 있어서, 조심조심 이동.

 

 

시노노이고교와 마찬가지로 들어가지는 않았지만, 대체 뭘 배우는 곳이지 의문이 들 정도로 학교가 엄청 컸던 게 인상적. 운동장이 엄청 넓었고, 뭔지 모를 이런저런 설비도 많았다.

 

 

시오지리역 1층의 토산품점에서 작은 크기의 와인과 포도주스를 사고, 바로 옆에 있던 식당에서 저녁.

알코올 마시면 피로 회복이 더딜 것 같다는 불안도 있었지만 그런 걸 생각할 때가 아니었지 (?)

지쳐있던 몸이라 그런지 맥주도 오야코동도 이루 말할 수 없는 꿀맛이었다.

 

 

이후로는 시노노이선 일반 열차를 타고 나가노역으로 복귀, 숙소에 체크인 하는 것으로 첫 나가노 일정을 마쳤다.

 

이날 걸은 거리는 17.7km, 주로 걸은 시간이 낮시간대에 집중되어 있어서, 무더위에 조금 고생을 했다.

Posted by 이림/에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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